Search

안희두 사직단 탐방기 – 단군성전 손안에 든 사직단

- 작게+ 크게

정흥교
기사입력 2020-05-20

 

 

[수원인터넷뉴스] 문화재 지정 사적 제121호인 사직단을 처음 방문한 것은 지난 49일이었다. 종묘를 둘러보고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왔다. 첫인상은 바깥 담에 있는 홍살문에서 사직단조차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불현 듯 반도체가 떠올랐다. 현재 한국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반도체의 모습이 안내도에서 보였다.

 

 

현존 건물 좌측 파란 원문자 : 1.사직대문 2.사단 3.직단 4.북신문 5.서신문 6.남신문 7.동신문 8.신실 9.신위행로 10.향축로 11.어로 12.판위 13.예감 14.안향청 15.화장실 16.관리사무소

 

복원예정 건물 우측 빨간 원문자 : 1.악공청 2.부장직소 3.중문 4.월랑 5.차장고 6.악기고 7.외감 8.어막대 9.저구가 10.제기고 11.재생전 12.전사청 13.제정 14.잡물고 15.수복방 

   

사직대문으로 들어와 한 바퀴 담장 밖으로, 정확하게 동신문, 남신문, 서신문, 북신문 밖에서 사직단 안쪽을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도로변은 담장으로, 절반은 발굴 및 복원공사 가림막으로 둘러싸여 돌다가 사직대문으로 나왔다. 집에 와서 무심코 생각하니 서울 사직공원 안에 있는 단군성전을 까맣게 잊고 왔다. 결국 424일 경복궁에 갔다가 다시 이곳에 와서 단군성전만 둘러보고 갔다. 집에 와서 사직단의 글을 쓰려고 컴퓨터로 사진 파일을 열어보니 쓸만한 게 없었다.

 

 사직단 안내도, 반도체 칩같지 않나요?

 

 사직단 정문인 사직대문, 가로 3, 세로 2칸 건물이다.

 

다시 기회가 왔다. 고교 동창 등산 모임에서 인왕산에 간단다. 궁궐 탐방기를 쓰려면 인왕산과 북악산은 반드시 올라서서 경복궁부터 따져봐야 한다. 내 몸의 상태로는 어렵지만 579시에 사직단에 다시 왔다. 빛바랜 팸플릿도 하나 챙기고 내부 입장도 허락을 받았다. 3바퀴 정도 돌며 다시 사진을 찍은 것 같다. 인왕산도 잘 다녀왔고, 친구들과 헤어져 종묘의 어정을 찾아보려 종묘에 다시 들렸다.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기에 오른쪽이 토지의 신인 社壇()이고, 왼쪽이 곡식의 신인 稷壇()이다. 오른쪽 계단 위에 반구인 돌이 보인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단은 동쪽에, 곡식의 신인 직단은 서쪽에 제사를 지내는 단을 배치하였다. 사직단은 정사각형의 평면이며, 한 변의 길이는 25(8m 3), 높이는 3(96.4)이었다. 제단의 사방에는 3층의 섬돌이 설치되어 있으며, 사단과 직단 사이의 간격은 5(1m 61)이란다.  

 

 토지의 신 사단(社壇)의 서쪽 계단 인근 제단 위에는 지름이 30정도인 반구가 있는데 석주(石主)라 부르며 깊이는 75정도 땅에 박혀 있단다. 여기가 조선땅의 중심임을 뜻한다고 한다.


태조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궁궐과 종묘를 조성할 때인 1395(태조 4) 4월에 고려의 제도를 따라 사직단도 함께 조성했는데, 임금이 있는 경복궁을 기준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을 세웠다. 사직단은 정확하게 남북을 향하지 않고 약간 동남쪽으로 틀어져 있는데, 이는 도성 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란다.  

 

 가운데에 경복궁과 좌측에 종묘와 우측에 사직단, 인왕산과 북악산


사직단은 백성의 배를 불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이미 고구려는 391(고국양왕 9), 신라는 선덕왕 4(783)에 사직단을 세웠고, 고려는 성종 10(991)에 세웠다. 청주, 천안, 부산 등에 사직동(社稷洞)이 현재도 있다. 사직단은 도읍이 아닌 지방 군현에도 세울 수 있어 조선땅에 수 백여 개였으나, 종묘는 유일하게 도읍에만 건립할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란다.  

 

 우측 끝에 신실이 보이고, 그 뒤에 발굴 및 복원 공사 중인 하얀 가림막이 보인다.

 

사직단은 국가에서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중요한 제례 공간으로, 그 건축 양식은 최고의 격식을 갖추었다. 제사는 2월과 8, 그리고 동지와 섣달그믐에 지냈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나 가뭄에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나 풍년을 비는 기곡제도 이곳에서 지냈다. 현재 사직대제는 매년 9월 넷째 토요일에 봉행하고 있단다

 

 2개의 기둥으로 만든 홍살문이 4군데 보인다.


사직단은 두 겹의 담장으로 둘러있는데 안쪽의 담장을 유()라 부르고 4개의 유문이 동서남북에 있으며, 밖의 담장에는 4개의 신문(神門)이 있다. 문은 모두 홍살문으로 안에 4, 밖에 4개로 총 8개인데, 북신문만 신이 드나드는 삼문(三門)으로 되어 있다

 

 북신문은 기둥이 넷인 삼문이다. 북신문에서 단으로 가는 길은 3차선이고 판위는 정사각형이다.


원래 사직단은 임진왜란 때 불타 제단만 남았었다. 현재 정문인 대문은 1608(선조 41)경 재건된 것으로, 정면 3, 측면 2칸으로 단층의 맞배지붕이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 민족을 업신여기기 위하여 일제강점기인 1922년 사직단을 공원으로 바뀌면서 제단을 비롯하여 정문인 대문과 안향청(安香廳)만 남기고 모두 없앴다. 대문은 1962년과 1973년 도로 확장으로 24m가량 뒤로 옮겨졌다고 한다. 또한 1970년대에는 도서관과 동사무소, 파출소, 수영장 등이 건립되어 주변 환경이 다시 크게 훼손되었다. 발굴작업과 함께 복원예정이라니 다행이지만, 언제 완료될까 안타깝다

 

 사직단 동쪽에서 서쪽방향 모습

 

 단군성전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은 두세 번, 태백산에 단군성전은 5번 정도 다녀온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사직단을 조사하다 서울 사직공원에 단군성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424일 찾아가 인사드렸다. 다녀오고서도 언제 건립되었나 자료 한 점 구하지 못하고 왔다. 57일 오전 930분경 다시 들려 어천절 팸플릿 한 장 얻었다.  

 

 단군상


사직공원 내 단군성전은 대한민국 최초의 공공건물(서울시 소유)로 세워진 단군성전이다. 봉안된 단군 영정은 정부 표준단군영정(문공부심의번호 77-27 가로 115, 170)과 불교 조각가 신상균이 제작한 높이 9척의 단군소상(檀君蔬像)(정부지정 국민공모상 문공부심의번호 77-16)을 봉안하여 우리민족의 상징이자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 국조숭모(國祖崇慕)의 참뜻을 되새기는 성전이다. 1973년 서울시로부터 보호문화재로 인정받았고, 1990년 오늘날 모습으로 개축했단다

 

 담장 너머 절벽 아래 사직단이 내려다보인다.


현정회에서는 매년 315일 국조 단군께서 승천하신 날인 어천절(御天節)로 제례 행사를 거행한다. 이 제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며 모든 인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고 조화된 행복한 세상을 바라신 국조 단군의 홍익인간 및 이화세계의 정신과 이상을 다짐함에 있단다. 참고로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세워져 약 2,200년 존속하였으며,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단군성전 홍살문


강화에서 태백까지 두루두루 살피다가

사직단 내려보며 반도체를 떠올렸다

부처님 손바닥에 노는 코로나? 고부일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Copyright ⓒ 수원인터넷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