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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두 경복궁 탐방기 5 태원전과 조선왕조의 국장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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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교
기사입력 2020-08-12

 


경복궁은 2020424일 방문했는데, 코로나 19로 단체 해설과 경회루 특별관람도 중단되고 자유관람만 허가되었다. 말이 자유관람이지 대부분 문은 닫혀 있어서 설령 들어가도 겉으로 돌다 나왔으며 관람객이 아주 적었다. 그러나 722일부터 예전의 프로그램이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닫혔던 문들이 열려 다시 관람하고 여행기를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장마를 뚫고 8711<경복궁 해설>에 참가했고, 812<경회루 특별관람>도 신청했다. 앞에서 말했듯 필자는 역사와는 문외한으로 <궁궐 안내자료><관련 홈페이지>를 바탕으로 경복궁을 관람한 이야기다.    

 

J-1 문경전 터와 역할

경회루를 떠나 태원전(泰元殿)으로 향했다. 지금 여기가 궁궐이 맞나 혹시 청와대에서 내려다보는데도 불구하고 깡으로 골프장을 돌고 있지 않나 의심이 들 정도로 쓸쓸하고 한가로웠다. 경회루에서 태원전 중간쯤에 복구되지 않은 문경전(文慶殿) 터를 지나 태원전 구역으로 들어갔다.

 

 경복궁 안에 문경전 터 근처(인왕산이 가면을 쓴 것 같다)

 

 문경전 터 표지석 문경전은 고종 초 경복궁을 중건할 때 태원전· 회안전과 함께 흉례(왕실의 상·장례)에 쓰기 위해 지었다. 대왕대비 신정왕후 조씨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으로 쓰였고, 경운궁(덕수궁의 본이름)을 지으면서 옮겨 갔다. (안내해설판 전문)


J-2 태원전 건립과 이유

태원전과 문경전 구역은 1868(고종 4)에 처음으로 대원군이 건립하였다. 그리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셨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순조 20) ~ 1898(광무 2)]의 아버지는 영조의 현손 남연군(南延君) ()이며, 아들은 조선 제26대 왕 고종이다.

 

1863,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뜨자 신정왕후(조선 익종의 비, 헌종의 생모)의 명에 따라 흥선군 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이 왕위에 올라 고종이 되었고, 하응은 흥선대원군에 봉해졌다. 고종이 12세로 어린 왕이라 조대비가 수렴청정하는 것으로 하였으나, 실제로 흥선대원군이 모든 결정권을 가졌다. 대원군은 왕자 출신이 아닌 고종의 왕권 승계에 대한 시비에 대응 일환으로 1868(고종 5) 태원전(泰元殿 사적 제117)을 세웠다. 이곳에 태조부터 역대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을 모심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태원전(泰元殿)


태원전은 경복궁의 빈전(殯殿)으로 왕이나 왕비 등의 장례를 치를 때까지 관을 모시는 전각으로 1868(고종 5)년에 처음 만들었다. 주변에 공묵재(恭默齋), 영사재(永思齋) 등 상례용 건물들도 들어와서 제례의 영역을 이루었다. 그리고 1890(고종 27)에는 신정왕후의 빈전으로, 1895(고종 32)에는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시신을 모시는빈전으로 사용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것을 2005년 복원한 것이다. 태원(泰元)은 하늘을 뜻하는데, 국장(國葬) 때 시신을 안치하는 곳이므로 하늘이라는 존칭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임금의 관을 재궁(梓宮)이라고 한다. 이 관은 임금이 즉위(卽位)한 해에 미리 준비하는데 벽()과 대관(大棺)으로 이뤄진 이중 관이다. ()은 팥으로 채우고 상하지 않도록 매년 옻칠을 했다. 입관(入棺) 때 시신(屍身)은 벽(), ()은 대관(大棺) 안에 들어간다. 입관(入棺)이 끝나면 재궁(梓宮)에는 쌀을 태운 재로 채운다. 널감(棺材, 관재)은 금강송(金剛松)이다.

 

재궁(梓宮)은 빈전(殯殿)에 마련한 찬궁(欑宮)에 든다. 찬궁(欑宮)이란 빈전(殯殿)의 중심에서 서쪽으로 약간 물린 자리에 5(15센티미터) 높이로 벽돌 기단(基壇)을 쌓고 지은 큰 상자 집이다.

 

재궁(梓宮)이 빈전(殯殿)의 찬궁에 들면 발인(發靷)할 때까지 5개월 동안 옻칠을 계속하고, 부패 방지용 얼음과 함께 흡습성이 강한 미역과 다시마를 재궁(梓宮) 주위에 비치한다. 이 기간에 민간인들에게는 미역과 다시마의 취식(取食)이 금지된다.

 

J-3 태원전의 공묵재와 영사재

공묵재(恭默齋)는 태원전 남행각에 연결되어 있으며 공손히 침묵한다는 의미로 태원전을 세울 때 같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공묵재(恭默齋)는 신정왕후(神貞王后) 국상(國喪) 때 고종(高宗)의 거려청(居廬廳, 상제가 거처하도록 마련한 집)으로 이용한 건물이다. 상주(喪主)는 후계(後繼) 왕이다. 발인(發靷)할 때까지 빈전(殯殿) 옆의 거려청(居廬廳)에 거처하면서 곡()하는 게 상주(喪主)의 법도(法道).

 

 영사재


주변에 공묵재, 영사재(永思齋) 등 의례용 건물도 들어서 신성한 일곽을 이루었다. 이곳은 궁 안의 외진 곳인데 고종은 태원전 재실인 공묵재에 머물면서 신하들을 만나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태원전 건물은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 5·16 이후 청와대 경호부대가 들어섰다가 2006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영사재(永思齋)는 태원전 동쪽에 있는 건물로 태원전과 함께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돌아가신 분을 오래도록 생각하여 가슴속에 새겨둔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영사재는 태원전(泰元殿) 뒤퇴에서 동쪽으로 댄 재실(齋室)이다. 이곳에서 제사(祭祀)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지내거나 외소주방(外燒廚房)에서 장만한 음식을 정돈했다.

 

 태원전 일원의 문 / 태원전 동쪽이 영사재


J-4 태원전의 문들

인수문(仁壽門)은 태원전의 정문인 건숙문(建肅門) 안쪽으로 서편 행각에 있는 문이다. 태원전과 같이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 어진 덕을 갖추고 장수한다는 뜻이다. '()'는 속자로 썼다.

 

유형문(維亨門)은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에서 경회루로 나아가는 첫 번째 문이다. ‘유형(維亨)’형통하다라는 뜻이다. 눈을 감고 있어도 형통한가보다. 광림문(廣臨門) 신무문에서 유형문으로 가기 전 동쪽으로 난 문이다. 현판이 서쪽에서 동쪽을 향하여 걸려 있다. 현재의 현판은 2005년 태원전 복원 공사 때 만들어졌으며 광림(廣臨)’널리 내려다본다를 뜻한다. 임금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살피듯, 모든 일을 밝게 살핀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유형문


J-5 신무문

신무문 권역은 ㄱ자 모양인데 꺾어지기 전에 신무문이 있고 아래 중간에 광림문, 끝에 유형문이 있다. 무슨 이유로 땅 모양이 ㄱ자 모양인가 물어보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 신무문이 활짝 열려 있어도 바리케이드가 있어 끝에 가지도 않고 광림문(廣臨門)에서 사진만 양쪽으로 찍었다. 임금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살피듯, 모든 일을 밝게 살핀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광림문, 현재의 현판은 2005년 태원전 복원 공사 때 만들어졌단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좀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낯익은 풍경


초등학교 수학여행

쫑알대며 걷던 길

엊그제 다시 걸으며

50년 전 돌아본다

홍예(虹蜺)에 다듬어진 얼굴

살가운 이역만리

 

 


J-6 태원전 들어가기 

 

 태원전 일원 안내판(사진)

 

 태원전 일원, 건숙문(建肅門)이 마중한다.

 

 첫 번째 문이 건숙문(建肅門)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경안문(景安門)이 있다.


이곳에 태원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건숙문(建肅門)과 경안문(景安門)을 통과해야 한다.

건숙(建肅)엄숙함을 세운다로 직역할 수 있다는데, 이 일대의 기능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건숙문을 들어서면 경안문(景安門)이 연이어 나오고, 경안(景安)크게 평안하다는 의미가 있다. 경안문을 들어서면 태원전까지 복도각으로 연결된다. 태원전 일원의 건축물은 모두 1868(고종 5)년 경복궁이 복원될 당시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가 2005년 복원한 건물들이다.

 

 경안문(景安門)

 

 경안문(景安門)에서 태원전으로 향하는 복도각은 혼백이 지나다니는 길이며, 우천시에는 재궁이 비에 젖지 말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한다. 창덕궁 선정전뿐만 아니라, 경희궁 자정전에도 복도각이 있다.

 

 홍경문


일중문(日中門)이라는 이름은 해가 한가운데 온다라는 의미

보강문(保康門) 홍경문과 이웃한 문이다. 뜻은 건강함을 지킨다라는 뜻.

경안문(景安門)크게 평안하다라는 뜻.

건길문(建吉門)은 영사재의 대문을 역할을 하며, ‘복을 세운다라는 뜻.

광림문(廣臨門)문 현판으로 광림(廣臨)이란 널리 내려다본다라는 뜻

 

 광림문


왕과 왕비가 죽으면 빈전에 관을 모시고, 교외에 마련된 산릉(山陵)에 시신(屍身)과 관()을 묻은 후에는 혼전에 신주(神主)를 모셔 정해진 장례 기간을 치른 후에 종묘(宗廟)로 신위(神位)를 옮겨 모시게 된다. (안내해설판 발췌)

 

왕실의 가장 큰 슬픔 흉례

 

 

조선왕조의 국장 절차 

 

       

J-7 태원전에 군대 주둔

경복궁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세워진 뒤, 태원전 터에는 일본 군대가 주둔하였다. 일제(日帝)가 물러가고 이 자리에는 수도 방위사령부 제30경비여단이 주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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