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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두 경복궁 탐방기 10 소주방과 생물방, 동궁과 사정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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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교
기사입력 2020-09-17

 


S-2 소주방(燒廚房)일원

 

경복궁 소주방 우물은 동궁 권역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으며 2005년에 발굴조사를 거쳐 2015년 소주방 권역 건물과 함께 복원한 것이다. 우물의 규모는 상면 전체 지름은 4m, 내부 지름은 1.2m이다. 이 우물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 사이에 있어 소주방에서 필요한 생활용수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현재 경복궁 안에는 소주방 우물을 포함해 총 7개의 우물을 볼 수 있다.(소주방 우물 안내판 인용)

 

 소주방(燒廚房) 우물


내소주방은 안소주방이라고도 불리며 왕과 왕비에게 이른 아침에 올리는 아침 수라와 낮것상이라고 부르는 점심, 저녁 수라 등의 궁궐의 일상식을 만드는 곳이다. 소주방에서는 최고의 궁중 요리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특산물과 진귀한 재료로 조리한 음식을 만들어 수라상을 올렸다. 내소주방에서 만드는 수라는 붉게 칠한 큰 둥근상(대원반)과 작은 둥근상(소원반) 그리고 네모진 책상반으로 세 개의 상에 차려진다. 책상반은 고기와 채소 등 전골재료를 올려놓는 전골상이다. 내소주방(燒廚房안내판 인용 

 

 내소주방(燒廚房)


외소주방은 밖소주방이라 불리며 궁궐 연회음식 등 각종 잔칫상을 준비하던 곳으로 정월, 단오, 추석, 동지 등의 명절음식을 비롯해 왕과 왕비의 탄생일, 왕족의 관례나 가례와 같은 잔치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다.외소주방 안내판 인용 

 

 외소주방(燒廚房)


경복궁 소주방 일원에는 낯선 생물방도 있다. 경복궁 관람객들이 차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경복궁 생과방 프로그램은 궁중문화축전 기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추진되는 경복궁 대표 궁궐 활용사업으로 궁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생과방은 생물방 혹은 생것방이라고도 불리며 조선시대 왕실의 별식을 만들던 전각을 일컫는다. 생과방에서는 궁중병과와 궁중약차를 먹고 마시며 쉴 수 있다.  

 

 생물방 입구(체온 측정과 QR코드 입력)

 

 생물방 메뉴 신청

 

 생물방 차와 다과

 

 코로나 안전을 위해 출입구에서 온도 측정과 QR코드 입력하고 했는데 좌석마저도 시원하게 띄어놓았다.

 

 다과 크기가 너무 작다.

 

 그림인가? 도자기인가?

 

T-1 동궁

 

 사정전과 자선당과 비현각

 

 천추전(千秋殿) : 사정전의 서쪽에는 천추전이 있으며, 1452514일 문종(세종의 장남)이 승하 한 곳이다. 문종이 일찍이 병사하지만 않았어도 단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만춘전(萬春殿) : 사정전의 오른쪽에 있는 만춘전이다. 동쪽은 봄이요, 서쪽은 가을을 나타낸다. 만춘전과 천추전은 온돌이 있어서 의례적인 일은 사정전에서 치르고, 일반적인 정사의 논의는 천추전이나 만춘전을 이용했다.

 

 이극문(貳極門) : 동궁전으로 들어가는 동쪽의 문으로 이극두 번째 북극을 뜻하므로 곧 왕세자를 의미한다.

 

 구현문(求賢門) : 비현각의 동문이며, 현자(賢者), 즉 인재를 구한다는 뜻이다.

 

 안에는 자선당(資善堂), 밖의 문은 진화문이란 문패가 있는데 자안당(資安堂)의 오류인 것 같다.

    

세종의 왕세자인 문종은 자선당에서 28년 동안 세자로 지냈는데, 세자 시절 단종을 낳았다. 문종은 왕위에 오른 지 24개월 만에 어린 아들(단종)을 두고 승하했다. 문종은 부인복이 없다. 첫 번째 세자빈(김씨)은 질투가 심해서 폐출되었으며, 두 번째 세자빈(봉씨)은 동성애에 빠져 폐출되었다. 세 번째 세자빈(현덕왕후)은 후궁으로 들어왔다가 단종을 낳았지만, 산후조리 부실로 그해 죽었다. 그 후 문종은 정식으로 왕비 없이 지냈다고 한다.

 

 건물에는 資善堂(자선당)이란 문패가 있고 앞의 해설에도 세자가 머무는 자선당이다. 건청궁에서 본 자선당 유구와 진화문 안에 자선당 등 셋의 관계를 나의 실력으로 풀이하기엔 한계를 느낀다.

 

 건청궁에 있는 자선당 유구 안내판

 

 세자방이다.

 

 비현각(丕顯閣)

    

비현각은 세자가 공부하며, 정무도 보던 근무공간이다. 왕이 될 인물이지만, 아직은 왕이 아니므로 강녕전과 비교하면 전각 규모가 작다. 비현각(丕顯閣)에서 비현은 크게 통달하거나 드러난다는 뜻이다. 비현각은 세자가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던 집인데 원래는 사정전 옆에 있던 것을 중종 때 동궁 구역으로 옮겼단다.

 

중종(1488-1544)은 신하들이 국왕인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 그날(1506918)로 즉위하였다. 얼마나 급하게 진행되었는지 면류관이 없어서 익선관을 대신 쓰고 즉위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세자 수련도 없이 숨죽여 살다가 준비 없이 왕위에 올랐고 양반에게 인심을 잃으면 국왕도 쫓겨난다는 실례가 되어서 그랬을까, 인종은 다섯 살에 왕세자가 되어 동궁에 살게 되었다. 중종은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려고 비현각을 일부러 크게 짓고 자신도 편한 차림으로 이곳에 자주 나와 정무를 보았다고 한다.

 

인종은 동궁(東宮)에 있은 지 25년 동안에 어진 덕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1544(중종 39) 11월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였지만 다음 해 71일 하늘이 낸 효자 임금도 병사하였다. 이때 인종의 나이 31세였으며, 치세 기간은 8개월에 불과했다.  

 

T-2 사정전 일원

 

 사정전

 

사정전은 경복궁 창건 당시인 태조 4(1395)에 지어졌으며, 명종 8(1553)에 불탄 뒤 재건했다. 그 후 선조 25(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종 4(1867)에 근정전, 경회루, 수정전 등과 함께 중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정전은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국정을 결정하기 위해 신하들과 밤낮으로 토론하고 경연제도를 통해 지식을 교류했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임금인 세종은 새벽 3시부터 신하들과 회의를 하곤했다고 한다. 반대로 연산군은 경연제도에 소홀했다 급기야는 경연 제도를 없애 버렸다.

 

좌우의 만춘전과 천추전은 비공식 업무 공간으로서 온돌방을 두어 왕과 신하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사정전 앞의 행각에는 천지현황 등 천자문 순서로 이름을 붙인 창고가 있는데 이곳에는 왕실의 물품들을 저장하였다.

 

 지자고(地字庫)

 

 사정전 일원

 

 사정전 내부(어좌 뒤에 오봉일월도, 벽에는 경복궁 내의 유일한 벽화 雲龍)


사정전(思政殿)에서

  

사정(事情)하면 한 마을에 시아비가 아홉이라

사정(射精)해도 물러터진 사정(査定)이라 쌓인 사정(沙汀)

사정(私情)은 사정(邪正)을 흐리니 눈 감고 걷는 사정(舍亭)

 

 사정전 앞 계단과 월대에 바로 붙여 앙부일구를 설치했고 바로 옆에 안내판이 있다.


앙부일구는 세종 16(1434)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서 해시계의 일종이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되었다. 청동으로 된 오목한 시계 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이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를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13개의 선 가운데 한 가운데가 춘·추부선이고, 맨 위의 선이 동지선, 맨 아래 선이 하지선이다. 세종 당시에 제작된 것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앙부일구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다. 여기 전시된 앙부일구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을 본뗘 제작되었다. 사정전 앞에 모형도가 있다.앙부일구 안내판 인용

  

 

사정전 앞에 <앙부일구>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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